* Let’s go for a walk.

조수석에서 자다 깬 엄마는 왜 이렇게 불편한 길을 돌아가는 거냐고 물었고 아빠는 수경이 예쁜 풍경 오래 보라고 했다. 영상 속 자꾸 웃는 나를 보고 엄마는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했다. 

여전히 홀로 걸어가는 것에 가장 큰 안정감을 느끼지만 돌아보면 혼자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다. 조건 없는 사랑과 묵묵한 응원으로 살아간다. 가히 영광스럽고 귀중한 12월


올 해 겨울은 소원을 준비 못해 눈 오는 창밖을 애써 모른 척 했는데 오늘은 눈길도 걸어보고 나뭇가지도 흔들어봤다. 일부러 겨울 바람을 맞으려 산책도 했다. 여유롭진 않지만 규칙적인 생활, 약간의 노동(..이고 싶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변수들- 그리고 여전한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한다.


-[ 관찰대상 : 서해경 박윤수 박포토 ]

*우리는 분명히 만났다


'저는 글을 쓰고 작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방문한 전시장에서 수경씨의 작업물과 노트를 보게 되었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메일 드립니다. 

큰 용기를 내어 연락 드리긴 하나, 협업이나 전시 제안이 아니니 편하게 거절하셔도 됩니다'


​ 위태로운 마음이 익숙해지던 시기 우리는 만났다. 낯선이 와의 대화에 크게 수줍어하는 사람들 이었다. 몇 분동안 숨 죽이고 눈동자만 굴리다가 ‘서로 실수를 하나씩 할까요’ 라고 내가 제안했고 작게 반말을 해보는 것으로 실수를 나눠 가지기로 했다. 

짧아진 호칭 덕분에 갑자기 친해진 것 처럼 보이는게 어색해서 한참을 웃다가, 조금 편해진 둘은 각자 잘 해내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사람 에게는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 만이 가지는 아우라 같은 것이 스쳤다. 눈썹을 둥글게 만들어서 까만 눈동자도 다 가릴만큼 밝게 웃는 사람이구나,

 당신도 나처럼 사소한 것에서 강박을 느낄까, 장면이 그려지는 노래를 좋아하나, 작은 스크래치 하나에 휘청거리며 살아갈까, 묻고 싶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다듬어진 목소리가 꽤 멋지다고 생각했고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내게 연락을 해줬을까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 문득 창작자 라는 카테고리에 함께 묶여 느슨하게 이어질 연대가 감동스럽기도 했다. ​


조금 신나버린 나는 그에게 내가 너무나 좋아해서 표지가 얇아진, 모서리를 마구 마구 접어 한없이 낡아진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새벽에 읽다 혼자 감동하여 형광펜을 죽죽 그어놓은 책들은 너무나 부끄러워 금비에게도 빌려준 적 없지만, 

그런 부끄러운 마음은 진실된 것이라는 걸 알기에  보여주고 싶었다 

악수조차 못해본 사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낡은책을 선물할 정도의 친구가 되는 날이 온다면 지금 하는 형식적인 문장들과 어색한 근육으로 웃던 모습이 서로에게 큰 놀림거리가 될 것 같아 웃음이 났다 


​ 언니 라고 부르고 싶어요.. 는 말은 혀 끝에만 남기고 우리는 ' 응원합니다, 작업으로 오래 볼 수있다면 좋겠어요' 같은 적절한 문장을 고르고 헤어졌다.


[관찰대상 - 연희동에서 글쓰는 '언니']

* 가지런한 눈썹

잘 걷다 꼭 돌아가 한 장 찍게 만드는 장면들.왜 자꾸 눈길이 가고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건지 몰라 얼마 전에는 나무 사이 강하게 내려앉은 빛을 보고 어떤 이의 가지런한 눈썹이 떠올랐는데 내가 눈썹을 볼 수 있는 위치라면 나와 키가 엇비슷 하거나 조금 컸을 것이고 나는 아마 눈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거나 조금 쫄아서 겨우 눈썹에 닿았겠지


 기억하기 위해 오래 바라본 건지 어쩌다 오래 보게 되어 선명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상대의 눈동자가 무슨색인지 머리 모양이 어떠했는지 그런 건 기억에 없고 비 온뒤 조금 축축했던 날씨와 가지런한 눈썹만 선명하다. 내려앉은 빛을 볼 때마다 겹치는 걸 보니 꽤나 다정한 기억이였나 싶다.


[관찰대상 - 눈썹..모르겠습니다]

* 우리 같은 사람들 

오빠의 연극를 처음 보았을 땐 어딘가 부끄럽고 숨고 싶어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고등학생인 나를 앉혀 놓고 주변을 뱅뱅 돌며 대사를 치게 하던 사람이라 아무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두살 터울의 오빠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고마운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 부터 나를 여동생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그의 태도 덕분에 10살 무렵 부터 조기교육 으로 익힌 레슬링 기술들, 누구 보다 빠르게 도망치는 법 에 대해 배웠고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생이 된 이후에 익힌 옷 몰래 입고 튀기 기술은 그야말로 빛을 발했다. 개강을 위해 올라가던 기차 안에서 분노에 찬 문자를 받게 되어도 킥킥 댈 정도였으니까.


서로 다른 시간을 통과하고 만난 10월의 가을날, 작은 소극장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 땀이 흠뻑 젖은 채로 관객 한명 한명 사진을 찍어주던 모습이 이상하게 슬펐다. 엄마가 보았으면 뒤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오빠가 처음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 갔을 때, 잘 안 열리는 병뚜껑 하나에도 '선이, 선이' 하던 모습. 마른 수건을 개면서도 비 오는 창밖을 보면서도 자꾸 미간을 못펴고 주저앉던 사람이라 나 혼자 보는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날.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등이 다 젖어있는데.  뜨거운 조명 앞에서 몇시간을 뛰어다녔으면서 90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나,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싶다가도 저 사람 자기 일을 사랑하는 구나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히던 날들이 성실하게 즐기고 희망을 걷는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관찰대상 - 레슬링 스승]  

*숨겨진 섬

어떤 남자가 꿈에 나와서 아직도 그런 음악이나 듣는 사람들과 어울리냐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마디라도 더 하려고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고 싶지 않아서 계속 노려만 보다가 결국 울어버렸다 일어나보니 나는 여전히 낮은 천장 아래 누워있었고 창문 밖에는 새가 지나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며 바람이 몸에 부딪히는 소리를 녹음했다. 밤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색이 변하는 하늘도 계속 올려다봤다. 아파트 아래 모래성 처럼 흙이 높게 쌓여있었는데 다시 보니 아파트는 보이지 않고 밤하늘과 모래성 만 보였다 작은 섬 이였다. 섬을 찾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젠 나도 어쩔 수 없는 일 이였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웃음이 났다​. 나는 이제 섬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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