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히 만났다
'저는 글을 쓰고 작게 음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방문한 전시장에서 수경씨의 작업물과 과정이 담긴 노트를 보게 되었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메일 드립니다.
큰 용기를 내어 연락 드리긴 하나, 협업이나 전시 제안이 아니니 편하게 거절하셔도 됩니다'
위태로운 마음이 익숙해지던 시기 우리는 만났다. 낯선이 와의 대화에 크게 수줍어하는 사람들 이었다. 몇 분동안 숨 죽이고 눈동자만 굴리다가 ‘서로 실수를 하나씩 할까요’ 라고 내가 제안했고 작게 반말을 해보는 것으로 실수를 나눠 가지기로 했다.
짧아진 호칭 덕분에 갑자기 친해진 것 처럼 보이는게 어색해서 한참을 웃다가, 조금 편해진 둘은 각자 잘 해내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사람 에게는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자 만이 가지는 아우라 같은 것이 스쳤다. 눈썹을 둥글게 만들어서 까만 눈동자도 다 가릴만큼 밝게 웃는 사람이구나,
당신도 나처럼 사소한 것에서 강박을 느낄까, 장면이 그려지는 노래를 좋아하나, 작은 스크래치 하나에 휘청거리며 살아갈까, 묻고 싶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다듬어진 목소리가 꽤 멋지다고 생각했고 이런 사람이 어떻게 내게 연락을 해줬을까
고마운 마음이 들다가 문득 창작자 라는 카테고리에 함께 묶여 느슨하게 이어질 연대가 감동스럽기도 했다.
조금 신나버린 나는 그에게 내가 너무나 좋아해서 표지가 얇아진, 모서리를 마구 마구 접어 한없이 낡아진 책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새벽에 읽다 혼자 감동하여 검은줄을 죽죽 그어놓은 책들은 너무나 부끄러워 금비에게도 빌려준 적 없지만,
그런 부끄러운 마음은 진실된 것이라는 걸 알기에 보여주고 싶었다
악수조차 못해본 사이지만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낡은책을 선물할 정도의 친구가 되는 날이 온다면 지금 하는 형식적인 문장들과 어색한 근육으로 웃던 모습들이 서로에게 큰 놀림거리가 될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언니 라고 부르고 싶어요.. 라는 말은 혀 끝에만 남기고 우리는 ' 응원합니다, 작업으로 오래 볼 수있다면 좋겠어요' 같은 적절한 문장을 고르고 헤어졌다.
* 지하철에서 이별
용산역에서 지하철이 멈출때 할머니들 인사는 좀 이상해 젊은이들에 비해 길고 지나치게 아쉬워하고 손을 한번 더 흔들고.. 곧 다시 볼거면서 내년에도 꼭 같이 올거면서
큰 보따리도 들고 이미 간 사람 뒷모습은 또 왜 그렇게 봐 어딘가 처연하고 위태롭고
심보선의 시가 그렇다 다정하면서도 가슴을 쥐게 하고 자꾸 돌아보게 하고
김일두의 노래가 그렇다 투박하면서도 가슴을 쥐게 하고 자꾸 멈추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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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지런한 눈썹
잘 걷다 꼭 돌아가 한 장 찍게 만드는 장면들. 왜 자꾸 눈길이 가고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건지 몰라 얼마 전에는 나무 사이 강하게 내려앉은 빛을 보고 어떤 이의 가지런한 눈썹이 떠올랐는데 내가 눈썹을 볼 수 있는 위치라면 나와 키가 엇비슷 하거나 조금 컸을 것이고 나는 아마 눈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거나 조금 쫄아서 겨우 눈썹에 닿았겠지
기억하기 위해 오래 바라본 건지 어쩌다 오래 보게 되어 선명해진 건지 모르겠으나 상대의 눈동자가 무슨색인지 얼굴엔 점이 있었는지 머리 모양이 어떠했는지 그런 건 기억에 없고 비 온뒤 조금 축축했던 날씨와 가지런한 눈썹만 선명하다
내려앉은 빛을 볼 때마다 겹치는 걸 보니 꽤나 다정한 기억이였나 싶다
* Let’s go for a walk.
조수석에서 자다 깬 엄마는 왜 이렇게 불편한 길을 돌아가는 거냐고 물었고 아빠는 수경이 예쁜 풍경 오래 보라고 했다. 영상 속 자꾸 웃는 나를 보고 엄마는 그냥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했다.
여전히 홀로 걸어가는 것에 가장 큰 안정감을 느끼지만 돌아보면 혼자 이뤄낸 건 아무것도 없다. 조건 없는 사랑과 묵묵한 응원으로 살아간다. 가히 영광스럽고 귀중한 12월
올 해 겨울은 소원을 준비 못해 눈 오는 창밖을 애써 모른 척 했는데 오늘은 눈길도 걸어보고 나뭇가지도 흔들어봤다. 일부러 겨울 바람을 맞으려 산책도 했다. 여유롭진 않지만 규칙적인 생활, 약간의 노동(..이고 싶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변수들
그리고 여전한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한다.
* 우리 같은 사람들
오빠의 연극를 처음 보았을 땐 어딘가 부끄럽고 숨고 싶어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고등학생인 나를 앉혀 놓고 주변을 뱅뱅 돌며 대사를 치게 하던 사람이라 아무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걸 보니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두살 터울의 오빠에게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고마운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 부터 나를 여동생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 덕분에 10살 무렵 부터 조기교육 으로 익힌 레슬링 기술들, 누구 보다 빠르게 도망치는 법 에 대해 배웠고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티 나지 않게 옷 훔치기 기술 역시 대담하고 빠르게 발전했다. 개강을 위해 올라가던 기차 안에서 분노에 찬 문자를 받게 되어도 킥킥 거릴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서로 다른 시간을 통과하고 만난 10월의 가을날, 작은 소극장
연극이 끝나고 무대 뒤 땀이 흠뻑 젖은 채로 관객 한명 한명 사진을 찍어주던 모습이 이상하게 슬펐다
엄마가 보았으면 뒤에서 얼마나 울었을까 오빠가 처음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 갔을 때, 잘 안 열리는 병뚜껑 하나에도 '선이, 선이' 하던 모습 마른 수건을 개면서도 비 오는 창밖을 보면서도 자꾸 미간을 못펴고 주저앉던 사람이라 나 혼자 보는게 다행이다 싶기도 했던 날.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등이 다 젖어있는데, 뜨거운 조명 앞에서 몇시간을 뛰어다녔으면서 90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나,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싶다가도 저 사람 자기 일을 사랑하는 구나,
자기 세계에 책임을 지고 있구나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해 스스로를 괴롭히던 날들이 성실하게 즐기고 희망을 걷는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1. 매체를 대하는 태도 변화 기계의 개입을 최소화 하였을 때 사진매체가 가질 수 있는 권력과, 한계를 관찰해보고 싶었다. 다른 매체에 비해 손의 개입이 미비한 사진매체가 작업자의 의도를 순수하게 표현하는 것에 자유로울 수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은 입력한 결과값에 맞춰 예측 가능한 이미지가 탄생하는 사진 프로세스에 대한 권태로움으로 이어졌다. 오랜 시간 다뤄온 매체를 대하는 태도에 먼저 변화를 주어야 했고 사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수행적인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매체 자체가 가지는 의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반복과 실험 행위를 통해 몸에 익은 조형적인 언어를 비우고 익숙했던 매체를 바라보는 작업자의 변화된 관점이 작품탄생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몰두하며 빠르게 재현되는 현 시대 이미지 생산 방식을 뒤로 하고 손의 움직임을 극대화 시켜 불명확하고 우연한 중첩 에서 오는 비가시적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전 채집운동 (gather movement) 시리즈에서는 포토그램 기법 (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감광지 위에 물체를 두고 노광을 주는 방식) 을 통해 유약한 구조를 이루거나 서로를 비워내기도 하며 하나의 완성을 이루는 빛의 흐름 속 에서 섬세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들의 흔적이 세밀한 감각의 변화를 수용하며 성장해가는 사회 속 개인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생각했고 몸을 움직이며 마주했던 비가시적 감각들을 빛의 수렴을 통해 표현하였다.
작년부터 선보인 ‘불규칙 속 조화’ ‘허무로 가는 길’ 시리즈는 반복적으로 쌓아 올린 빛과 점, 그리고 선으로 완성시킨 결과물을 다시 빛으로 태우거나 그 속에서 새로운 조화를 발견하는 하나의 수행 방식이다. 지우는 게 아닌 ‘태운다’라는 개념은 ‘사진매체만 가질 수 있는 도구적 특성이라고 생각 한다. 한번 태워진 이미지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비우고 포기하는 연습을 시작하고 있다. 명도와 배치를 눈으로 확인하며 수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시각예술 프로세스와 다르게 허공에 이미지를 예측하며 과정 조차 눈으로 볼 수없는 어두운 암실 에서의 작업은 가끔 깊은 허무에 빠지게 했다. 오래도록 연습한 손의 감각을 상기시키고 명확하고 선명한 선을 그어보자는 마음으로 작업실에 들어서지만 작은 종이 속 우연한 잔상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섬세한 아름다움을 마주할때면 조급한 마음을 비워내고 허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추구해온 삶의 이상향에 가까워진다는 걸 깨닫곤 한다.
완전한 허무의 형태로 지워지더라도 그 속에 희미하고 굵은 선들이 존재했다는 걸 인지하며 색 중 가장 어두운 색으로 욕심을 버리고 생각을 비우는 법을 배우고 있다. 2. 사실적 재현에 대한 새로운 정의 진행중인 프로젝트는 과거 사진의 탄생 이유 ( '사실적 재현') 에서 출발한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 부터 과거이다. 남기고 싶은 순간들은 시각적 데이터로 쉽고 명확하게 고정 되겠지만 매일 망각의 밤은 찾아오고 가라앉은 마음을 회복시키던 기억 속 감정들은 점차 희미해져 갈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과거의 사진은 하나의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며 단순히 눈을 통해 인지하는 '시각'의 감각만이 진실이 된다는 생각이들었다. 그렇다면 과거 시점에서 시간이 흐른 후 변화한 경험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거짓이 되는 걸까. ‘사실적 재현' 이라는 말은 이미지로서 의 사실만 말하는 것인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진은 그저 여러개의 점(dot) 이 모여서 완성된 하나의 형상일 뿐이고, 무의식 속 오랜 시간 반복을 거쳐 축적된 감각의 경험들이 진실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그저 유약한 빛의 형태들( 점,dot) 을 인지하는 것이고 그것들이 남긴 형상을 통해 각자의 기억 속 잊혀졌던 장면들이 회복되어 하나의 데이터가 되는 것이 '진실'이 아닐까 생각했다.
반복과 수행의 과정 속 마주한 세계에서 우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 '아름다움'의 기준을 개인이 축적해온 감각의 경험에 의해 스스로 정의하는 것), 복제사진 이 아닌 불명확하고 모호한 ‘그리는’사진을 통해 상상의 틈을 비워두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실적 재현(사진)이다.
모르는 사람이 걸어온 길을 상상해보며 따라가는 건 즐겁다